기초연금이 오른 만큼 생계급여가 깎여 수급 노인은 제자리
기초연금과 생계급여를 함께 받는 노인 67만 명은 기초연금이 오른 만큼 생계급여가 깎입니다. 2024년 삭감액은 월평균 32만 4993원으로 당시 기초연금 최대액의 97.1%였습니다. 인상액이 아니라 회수된 뒤 남는 금액이 손에 들어옵니다.

목차 · 9개 단락
기초연금과 생계급여를 함께 받는 노인이 67만 명입니다. 받은 만큼 깎입니다. 2024년 이들 중 99.9%의 생계급여가 줄었고, 삭감액은 월평균 32만 4993원으로 당시 기초연금 최대액의 97.1%였습니다.
9월 1일 공개된 2027년도 예산안에서 기초연금은 2014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소득에 따라 금액을 다르게 줍니다. 소득 하위 30%에 월 3만 원을 더 얹는 개편이라,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더 준다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부부감액률도 완화됩니다. 지금은 부부가 함께 받으면 각자 20%씩 깎이는데, 하위 45% 이하 234만 명은 10%로 줄어듭니다. 하위 30% 부부의 합산액은 56만 원에서 68만 4000원이 됩니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처럼 국민연금과 따로 운영되는 연금을 직역연금이라고 합니다. 이 연금을 받지만 소득과 재산이 기준에 못 미치는 11만 명도 새로 대상에 들어옵니다.
그 3만 원도 같은 경로를 지나갑니다. 생계급여는 다른 데서 들어온 소득이 있으면 모자란 만큼만 채우고, 기초연금은 그 ’다른 소득’에 들어갑니다. 어떤 지원이 얼마 올랐다는 발표에서 확인할 값은 인상액이 아니라 회수되고 남는 금액입니다. 그 값은 대개 발표되지 않습니다.
정반대 방향의 비판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이 발표에 대한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두 비판이 같은 날 나왔습니다.
한쪽은 너무 나갔다고 합니다. 참여연대는 부부감액률 완화와 직역연금 수급자 포함은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금액 자체를 소득에 따라 나누는 방식에는 반대했습니다. 정액으로 주는 것이 기초연금의 원리인데 그것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쪽은 덜 나갔다고 합니다. 복지부가 원래 검토하던 안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의 자격 문턱을 더 좁히는 것이었습니다. 기준중위소득은 전 국민을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값으로, 정부가 해마다 정해 복지 제도의 잣대로 씁니다. 그 값의 90%까지였던 문턱을 2030년에는 80%까지 낮추자는 안이었습니다. 그러면 수급 범위가 노인 하위 70%에서 약 63%로 줄어듭니다. 그 안이 접혔습니다. 그래서 이번 개편은 현행 유지보다 오히려 6000억 원이 더 듭니다.
같은 개편을 두고 “보장을 훼손했다”와 “개혁이 후퇴했다”가 동시에 나옵니다.
이럴 때 저는 대개 평가 기준이 갈려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무엇이 갈렸는지가 비교적 분명합니다.
기초연금은 무엇인가
두 종류의 제도가 있습니다.
금액은 같음
다른 급여와 상계하지 않음
권리에 가까움
금액은 사정에 따라 다름
다른 소득이 있으면 그만큼 뺌
보충에 가까움
기초연금은 처음부터 이 둘 사이에 있었습니다. 정액으로 주는 것은 사회수당의 방식이고, 소득을 심사해서 70%만 주는 것은 공공부조의 방식입니다. 두 원리를 섞어 놓은 제도였습니다.
이번 개편은 그중 공공부조 쪽으로 한 걸음 옮긴 것입니다. 금액을 사정에 따라 다르게 주기 시작했으니까요.
범위는 안 건드렸습니다. 하위 70%는 그대로입니다. 공공부조라면 70%는 지나치게 넓고, 사회수당이라면 차등은 원리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반쪽 개편”이라는 말이 정확합니다. 다만 그 이유는 덜 했기 때문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둘을 더 섞었기 때문입니다.
3만 원은 어디로 가나
여기서 이 글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장 낮은 구간, 하위 30%의 348만 명이 3만 원을 더 받습니다. 명분은 분명합니다.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더 준다.
그 348만 명 안에는 생계급여도 함께 받는 노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기초연금이 다르게 작동합니다.
67만 4639명(99.9%)의 생계급여가 깎였습니다.
월평균 삭감액은 32만 4993원, 당시 기초연금 최대액의 97.1%였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제도에는 보충성 원칙과 타급여 우선 원칙이 있습니다. 다른 데서 들어온 소득이 있으면 생계급여는 그만큼 줄여서 채웁니다. 그리고 기초연금은 그 ’다른 소득’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됩니다. 가장 가난한 노인 67만 명에게 기초연금은 사실상 0원에 가깝습니다. 통장에 들어왔다가 생계급여에서 그만큼 빠져나갑니다. 이 비율은 2020년 96.9%에서 계속 올라 지난해 97.1%가 됐습니다.
이번에 늘어나는 3만 원도 같은 경로를 지나갑니다. 하위 30% 348만 명 가운데 약 5명 중 1명은 이 경로에 있습니다.
이 제도는 이미 세 정부를 지나오는 동안 그대로 있었습니다.
제도 단위로 설계되고, 가계 단위로 도착합니다
여기가 구조입니다.
기초연금은 기초연금의 논리로 설계됩니다. 생계급여는 생계급여의 논리로 설계됩니다. 각각은 자기 안에서 합리적입니다. 보충성 원칙은 한정된 예산으로 최저생활을 보장하려면 필요한 원칙이고, 기초연금 차등은 같은 돈으로 더 가난한 쪽에 더 주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돈은 제도로 가지 않고 가계로 갑니다. 한 노인의 통장에는 두 제도가 함께 들어옵니다. 그리고 두 제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각각의 설계자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여러 제도에 동시에 걸쳐 있는 사람이 곧 가장 가난한 사람입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해당되는 지원이 많고, 지원이 많을수록 한쪽에서 받은 돈만큼 다른 쪽에서 깎이는 자리도 많아집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제도를 하나씩 개선하는 방식은,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덜 도달합니다.
같은 질문의 다른 층
이 블로그에서 청년 주거정책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용률이 소득 최하위층에서 6.2%, 최상위층에서 21.1%로 나타난 자료였습니다. 자격 요건을 90%까지 넓혔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때 제가 내린 결론은 이랬습니다. 명시된 기준은 소득인데, 실제로 사람을 걸러내는 것은 자산이었습니다. 보증금을 댈 수 있느냐가 문을 통과할 수 있느냐를 정했습니다.
이번 사안은 같은 질문의 다른 층입니다.
보증금, 서류, 정보가 막음
명시된 기준과 실제 기준이 다름
다른 제도가 같은 돈을 회수함
발표된 금액과 도달 금액이 다름
두 층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정책 문서에 적힌 숫자와 사람에게 도착하는 숫자가 왜 다른가.
주거에서는 진입 단계에서 갈렸고, 연금에서는 도착 단계에서 갈립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가장 가난한 쪽에서 격차가 가장 큽니다.
근로장려금과 각종 감면에서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각종 감면과 지원이 소득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 기준들이 서로를 참조합니다. 한 지원을 받으면 소득으로 잡혀 다른 지원의 자격을 잃거나 금액이 줄어드는 일이 생깁니다.
근로장려금, 각종 바우처, 요금 감면, 의료비 지원. 개별로 보면 다 합리적인 설계입니다. 한 가구에 여럿이 겹치면 합이 예상과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정책이 “얼마를 준다”고 발표될 때 저는 이 순서로 확인하려고 합니다.
- 받는 사람이 다른 제도에도 걸쳐 있나. 저소득일수록 걸쳐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 그 제도가 이 돈을 소득으로 보나. 본다면 그만큼 회수됩니다
- 회수되고 남는 금액이 얼마인가. 이 숫자는 대개 발표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가 실제로 사람에게 도착하는 금액입니다. 그리고 발표되는 것은 첫 번째 숫자입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첫째, 67만 명이라는 수치는 2024년 자료입니다. 김선민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로 보도된 것이고, 2027년에 얼마가 될지는 다릅니다. 삭감 비율이 97.1%였다는 것도 그해 기준입니다. 방향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만 정확한 값으로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하위 30% 348만 명 전체가 여기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생계급여를 함께 받는 노인은 그중 일부이고, 대략 5분의 1 정도로 추정했습니다. 나머지에게는 3만 원이 그대로 들어갑니다. 이 글은 상계가 일어나는 부분을 짚은 것이지 개편 전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셋째, 보충성 원칙이 잘못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저생활선을 맞추려면 다른 소득을 반영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습니다. 이 글이 짚은 것은 원칙 자체가 아니라, 그 원칙이 있는 줄 모르고 다른 제도를 늘렸을 때 생기는 어긋남입니다.
넷째, 부부감액률 완화는 상계 문제와 별개로 실질 인상 효과가 있습니다. 하위 30% 부부 합산 56만 원에서 68만 4000원은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직역연금 수급자 11만 명 신규 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은 참여연대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섯째, 두 방향의 비판 중 어느 쪽이 옳은지 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수급 범위를 줄여야 하는지, 정액을 지켜야 하는지는 기초연금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건 자료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기초연금을 아예 못 받나요? 받습니다. 통장에 들어옵니다. 다만 그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듭니다. 2024년 기준 평균 32만 4993원이 깎였고, 이는 당시 기초연금 최대액의 97.1%였습니다.
Q. 왜 이렇게 설계돼 있나요? 생계급여는 ‘최저생활에 모자란 만큼 채워 주는’ 제도입니다. 다른 소득이 늘면 모자란 몫이 줄어드니 급여도 줄어듭니다. 제도 안에서는 일관된 논리입니다. 그 결과 기초연금을 늘릴 때마다 이 노인들에게는 효과가 상쇄됩니다.
Q. 하위 45-70%는 왜 동결인가요? 발표에 따르면 이 구간 290만 명은 이번에 인상도 물가 반영도 없습니다. 명목 금액이 그대로면 물가가 오르는 만큼 실질 구매력은 줄어듭니다. 참여연대가 지적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Q. 원래 검토하던 안은 뭐였나요? 신규 진입자의 선정 기준을 단계적으로 낮춰 수급 범위를 하위 70%에서 약 63%로 줄이는 방안이었습니다. 채택되지 않았고, 그 결과 이번 개편은 현행 유지보다 6000억 원이 더 듭니다.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생기는 일
복지는 제도 단위로 설계되고 가계 단위로 도착합니다. 그래서 한 제도에서 늘린 돈이 다른 제도에서 회수될 수 있고, 여러 제도에 걸쳐 있는 사람일수록 그 일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여러 제도에 걸쳐 있는 사람이 곧 가장 가난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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