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추모일에 잡힌 메트 갈리아노 회고전 개막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준비하는 존 갈리아노 회고전의 개막 행사 날짜가 홀로코스트 추모일과 겹칩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을 일정이 잡혔다는 것은 판단의 실패가 아니라 걸러 낼 단계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방송 출연 정지부터 교과서 수록까지, 한국에서 반복되는 논란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사색가 J12분 분량
미술관 의상 전시실의 마네킹에 입혀진 드레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미술관 의상 전시실의 마네킹에 입혀진 드레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목차 · 10개 단락
  1. 감상과 전시는 다른 행위입니다
  2. 회고전은 형식 자체가 인격을 다룹니다
  3. ’맥락과 함께’의 비대칭
  4. 날짜가 드러낸 것
  5. 그래서 질문은 ’누가 어떤 절차로 정하는가’입니다
  6. 양쪽의 논거
  7. 그래서 제 생각은
  8.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9. 자주 묻는 질문
  10. 메트가 답해야 할 질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2027년 메트 갈라를 개막 행사로 삼아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회고전을 엽니다. 그런데 그 갈라 예정일이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욤 하쇼아와 겹칩니다. 갈리아노는 2011년 프랑스 법정에서 유대인과 아시아인을 겨냥한 혐오 발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논쟁은 익숙한 형태로 흘러갑니다. 예술과 인격을 분리할 수 있는가. 바그너를 들어도 되는가, 폴란스키 영화를 봐도 되는가와 같은 계열의 질문입니다.

그 질문으로는 날짜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홀로코스트를 언급한 발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의 회고전을 홀로코스트 추모일에 개막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텐데, 그 일정은 잡혔습니다.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원하지 않은 결정이 나왔다면 그것은 판단을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것을 걸러 낼 절차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방송 출연 정지, 도서관 장서 선정, 교과서 수록, 시상식 후보 배제 — 한국에서 같은 종류의 논란이 터질 때마다 싸움이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이유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감상과 전시는 다른 행위입니다

회고전은 코스튬 인스티튜트에서 아홉 달 동안 열립니다. 갈리아노는 2011년 프랑스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파리의 한 술집에서 두 차례에 걸쳐 유대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한 혐의였습니다. 그가 “나는 히틀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스실을 언급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15년간 맡았던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해임됐습니다.

미술계와 정치권에서 반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페이스 갤러리 설립자 아르네 글림처가 공개 비판에 나섰고, 뉴욕시의회 의장 줄리 메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높이기로 선택하는가는 우리 가치에 대한 직접적인 선언입니다.”

미술관 쪽 답변도 나왔습니다. 맥스 홀라인 관장은 “메트는 반유대주의와 인종주의, 어떤 종류의 편견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고, 앤드루 볼턴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실패를 직접 다루지 않고서는 어떤 비평적 평가도 완성될 수 없습니다.”

’분리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개인의 감상을 전제합니다. 내가 이 옷을 아름답다고 느껴도 되는가. 이 음악을 즐겨도 되는가.

미술관이 전시를 여는 일은 감상과 다릅니다. 배분입니다.

아홉 달짜리 회고전 하나가 쓰는 것
전시 공간 예산 큐레이터의 시간 아홉 달의 일정 기관의 정당성

앞의 네 가지는 유한합니다. 하나를 열면 다른 하나는 못 엽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유한하지 않지만 양도됩니다. 미술관이 회고전을 열면, 미술관이 가진 권위의 일부가 그 대상에게 옮겨 갑니다.

줄리 메닌의 문장이 정확히 이 지점을 짚었습니다. “누구를 높이기로 선택하는가.” 여기서 핵심은 ’높인다’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그러니 이 사안의 질문은 **“분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자원을 여기에 쓸 것인가”**입니다. 앞의 질문에는 원칙적인 답이 있을 법하지만, 뒤의 질문은 매번 구체적으로 답해야 합니다.

회고전은 형식 자체가 인격을 다룹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개별 작품 전시와 회고전은 다른 형식입니다.

어떤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소장품으로 거는 것과, 그 사람의 생애 전체를 시기별로 정리해 아홉 달 동안 보여 주는 것은 성격이 다릅니다. 회고전은 한 인물의 궤적을 서사로 만들어 주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회고전에서는 “작품만 보겠다”가 형식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그 형식 자체가 이미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볼턴 큐레이터가 “실패를 직접 다루겠다”고 한 것은 이 사실을 인정한 답변으로 보입니다. 회피보다는 정면 대응에 가깝습니다.

’맥락과 함께’의 비대칭

논란이 생길 때 기관이 내놓는 표준적인 해법이 있습니다. 맥락과 함께 다루겠다. 벽에 설명을 붙이고, 도록에 비판적 논문을 싣고, 관련 프로그램을 연다는 것입니다.

이 해법은 진지합니다. 그리고 종종 옳습니다. 역사를 지우는 것도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니까요.

다만 여기에는 비대칭이 하나 있습니다.

  • 옷은 이미지로 남습니다. 사진이 찍히고, 공유되고, 몇 년 뒤에도 돌아다닙니다
  • 맥락은 텍스트로 남습니다. 벽에 붙은 글을 읽는 데 쓰는 시간은 몇 초이고, 사진에는 찍히지 않습니다

특히 갈라는 사진을 찍기 위한 행사입니다. 붉은 카펫에서 나오는 이미지에 벽면 텍스트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맥락과 함께’는 전시장 안에서는 작동할 수 있어도, 전시장 밖으로 나가는 이미지에는 잘 붙지 않습니다. 이것은 큐레이터의 성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의 성질 문제입니다.

날짜가 드러낸 것

그리고 이 사안에서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2027년 메트 갈라 예정일이 욤 하쇼아, 곧 홀로코스트 추모일과 겹칩니다.

갈라는 관례상 5월 첫째 주 월요일에 열립니다. 그 날짜가 올해는 추모일과 만났습니다.

이건 판단보다 절차의 문제입니다.

홀로코스트를 언급한 발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의 회고전을, 홀로코스트 추모일에 개막하는 일정.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일정은 그대로 잡혔습니다. 그 말은 이런 것을 걸러낼 절차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 주최 측은 날짜 변경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인지하고 고치려는 것은 맞지만, 논란이 커진 뒤에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누가 어떤 절차로 정하는가’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 사안의 구조가 보입니다.

지금 작동하는 결정 경로
큐레이터 기획 → 내부 승인 → 발표 → 외부 반발 → 기부자 압박 → 사후 조정
공개된 판단 기준이 들어가는 칸이 없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기부자가 약속한 기부를 철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가 이 구조에서 가장 위태로운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자의 반응이 결정을 바꾸면, 그건 기준이 작동한 것이 아니라 힘이 작동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 힘이 다수가 옳다고 여길 방향으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경로는 반대 방향으로도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이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후원자의 이름을 건물에서 뗄 것인가, 출처가 불분명한 유물을 반환할 것인가 같은 결정을 계속해 왔습니다.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기준이 문서로 남지 않은 문제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매번 처음부터 다툽니다. 그리고 매번 처음부터 다투면, 그때그때 목소리가 큰 쪽이 이깁니다.

양쪽의 논거

제 판단을 적기 전에 양쪽을 놓겠습니다.

전시를 열어야 한다는 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리아노는 형사 절차를 거쳤고 처벌을 받았습니다. 처벌 이후에도 영구히 배제한다면 그건 사법 절차 밖의 무기한 제재입니다. 그의 작업은 1990년대 이후 패션사에서 실제로 중요하고, 그것을 다루지 않으면 역사에 구멍이 남습니다. 실패를 함께 서술하는 비평적 회고전은 오히려 정면 대응입니다.

열어서는 안 된다는 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시는 처벌이 아니라 영예입니다.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영예를 받을 자격까지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공적 기관이 자원을 배분하는 행위에는 누구에게 쓰지 않을 자유도 포함됩니다. 다루지 않는 것과 지우는 것은 다릅니다.

양쪽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대립이 원칙으로 해소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분리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고 봅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답할 것이고, 그 답들 사이에 우열을 가릴 기준도 마땅치 않습니다.

절차에 관한 질문에는 답이 있습니다.

  • 이런 결정을 내릴 때 무엇을 검토하는지 미리 정해 두었는가
  • 그 검토에 누가 참여하는가
  • 결정의 이유를 공개하는가
  • 날짜가 추모일과 겹치는 것 같은 문제를 거를 단계가 있는가

메트가 이번에 답해야 할 것은 갈리아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이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답해 두면, 다음 사안에서는 논쟁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지 않습니다.

미술관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방송 출연 정지, 도서관 장서 선정, 교과서 수록, 시상식 후보 배제 — 한국에서도 같은 종류의 결정이 반복되지만, 대개 개별 사건으로 다뤄지고 기준은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사건이 오면 또 처음부터 싸웁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 메트에 내부 기준이 있는데 공개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저는 공개된 보도만 봤고, 미술관 내부의 검토 절차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기준이 있는데 이번에 작동하지 않은 것과, 애초에 없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 날짜 문제를 제가 과대 해석했을 수 있습니다. 갈라 날짜는 관례로 정해지고 추모일은 해마다 옮겨 다니므로, 우연의 요소가 큽니다. 다만 그렇더라도 겹침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다면 걸렸을 것이라는 점은 남습니다.
  • ’기부자 압박은 기준이 아니다’는 것은 제 관점입니다. 기부자도 기관의 이해관계자이고, 그 의견이 결정에 반영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반영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경우입니다.
  • 전시는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실제 구성과 서술 방식에 따라 평가는 달라져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갈리아노는 정확히 무엇으로 유죄를 받았나요?

2011년 프랑스 법정이 파리의 한 술집에서 두 차례에 걸쳐 유대인과 아시아인을 겨냥한 혐오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이후 “나는 히틀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디올에서 해임됐습니다.

Q. 메트는 전시를 취소하나요?

현재까지 취소 발표는 없습니다. 갈라 날짜 변경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Q. 처벌을 받았으면 된 것 아닌가요?

형사 처벌과 사회적 영예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 반대 측 논거입니다. 처벌은 국가가 부과하는 제재이고, 전시는 기관이 부여하는 인정입니다. 반대로 처벌 이후 무기한 배제가 정당하냐는 반론도 성립합니다.

Q. 그럼 문제 있는 인물의 작업은 다루면 안 되나요?

이 글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루는 것과 기리는 것은 다르고,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을 미리 정해 두었는가가 이 글의 질문입니다.

메트가 답해야 할 질문

’예술과 인격을 분리할 수 있는가’는 개인이 답할 질문입니다. 답이 사람마다 다르고, 그래서 아무리 오래 다퉈도 끝나지 않습니다.

기관이 답해야 할 질문은 다릅니다. 유한한 자원을 어디에 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무슨 절차로 정할 것인가.

추모일과 겹친 날짜는 판단의 실패가 아니라 절차의 부재를 보여 줍니다. 아무도 그러려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면, 걸러 낼 단계가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색가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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