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집이 모자라서 줄었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1년 전보다 12.8%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상반기 입주 물량은 58.4% 감소했고, 전월세 계약 중 월세 비중은 68.3%가 됐으며, 8월 계약의 51.3%는 새 계약이 아닌 갱신이었습니다. 셋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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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격자가 드러난 고층 아파트 단지를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창문 격자가 드러난 고층 아파트 단지를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목차 · 8개 단락
  1. ’매물’이 세는 것
  2. 세 경로는 처방이 다릅니다
  3. 월세로 넘어간 속도
  4. ’눌러앉기’가 안전하지 않은 경우
  5. 값은 어디까지 올랐나
  6. 계약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 하나
  7. 자주 묻는 질문
  8.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는 기사가 9월 초에 나왔습니다. 매물이 워낙 없어서, 보러 가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채 간다는 것입니다.

숫자로도 그렇습니다. 8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 9904건입니다. 한 달 전보다 5.9%, 1년 전보다 12.8% 적습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보증금은 7억 1178만원으로 역대 최고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집이 모자라서”라는 결론으로 가게 됩니다. 절반만 맞습니다.

’매물’이 세는 것

먼저 용어를 하나 정리하겠습니다. 매물 건수는 서울에 있는 전셋집의 총 수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중개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의 수입니다.

서울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가구는 매물 건수와 견줄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1만 9904건은 그중 지금 막 시장에 나온 몫입니다. 나머지 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매물이 줄었다는 말은 “집이 줄었다”가 아니라 “시장에 나오는 속도가 느려졌다”에 가깝습니다. 물이 담긴 통의 크기가 아니라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양을 재는 숫자입니다.

수도꼭지가 가늘어지는 경로는 여러 갈래입니다. 최근 자료에서 확인되는 것만 세 갈래입니다.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서로 다른 경로
집 자체가 덜 생겼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 2251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4% 줄었습니다. 6월 한 달만 보면 1561가구, 82.1% 감소입니다.
있던 전세가 월세로 바뀌었다
전국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68.3%가 됐습니다. 서울은 1~7월 기준 69.7%입니다. 같은 집이 임대로 나와도 전세 매물로는 잡히지 않습니다.
살던 사람이 나가지 않았다
8월 전월세 계약의 51.3%가 새 계약이 아닌 갱신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갱신이 절반을 넘은 첫 달입니다.

세 경로는 처방이 다릅니다

첫 번째가 원인이라면 답은 공급입니다. 다만 아파트는 착공에서 입주까지 3년 안팎이 걸립니다. 올해 매물이 없는 이유는 3년 전에 덜 지었기 때문이고, 오늘 짓기 시작해도 지금 세입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가 원인이라면 답은 다른 쪽에 있습니다. 집은 그대로인데 계약 형태만 바뀐 것이므로 집을 더 짓는다고 전세가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월세로 돌아선 이유를 봐야 합니다.

세 번째는 성격이 다릅니다. 살던 사람이 계속 사는 것은 세입자에게 나쁜 일이 아닙니다. 이사 비용도 중개 수수료도 들지 않습니다. 매물 건수가 줄었다는 통계는 이 경우를 시장 악화로 기록하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안정입니다.

같은 ’매물 감소’라는 숫자가 하나는 공급 실패, 하나는 계약 구조 변화, 하나는 주거 안정을 뜻합니다.

월세로 넘어간 속도

두 번째 경로는 최근 몇 년의 변화 폭이 큽니다.

전국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 (각 해 1~2월 누계)
2022년
47.1%
2023년
52.4%
2024년
57.5%
2025년
61.4%
2026년
68.3%
4년 만에 21.2%포인트 올랐습니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 기준입니다.

건수로 보면 올해 2월 전세 거래는 7만 6308건이었습니다. 최근 5년 평균보다 33.1%, 1년 전보다 26.0% 적습니다. 같은 달 월세 거래는 17만 7115건으로 5년 평균보다 29.6% 많았습니다.

전세를 피하게 된 이유로는 전세사기 이후의 불안과 전세대출 규제가 함께 꼽힙니다. 세입자가 목돈을 맡기기를 꺼리고, 맡기려 해도 빌리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멈춰 선 금속 회전문, 날개 하나가 통로를 가로막고 있다
집의 수가 아니라 드나드는 속도가 줄었습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눌러앉기’가 안전하지 않은 경우

세 번째 경로를 다시 보겠습니다. 갱신이 절반을 넘었다는 통계는 세입자에게 좋은 소식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갱신에는 두 종류가 있고, 둘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써서 하는 갱신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가 한 번 이 권리를 쓰면 2년을 더 살 수 있게 하고, 이때 임대료는 5%를 넘겨 올리지 못하도록 못 박아 두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권리를 쓰지 않고 집주인과 새로 합의해서 하는 갱신입니다. 이 경우에는 5% 상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계약서에는 똑같이 ’갱신’이라고 적히지만 가격을 정하는 규칙이 다릅니다.

8월 갱신계약 가운데 직전 계약과 값을 비교할 수 있는 1107건을 보면, 74.9%에서 임대료가 올랐습니다. 9%는 50%를 넘게 올랐고, 3.7%는 두 배가 됐습니다.

살던 집에 계속 사는 것이 반드시 부담이 그대로라는 뜻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권리를 한 번 써 버렸거나,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경우가 이 통계 안에 섞여 있습니다.

값은 어디까지 올랐나

한국부동산원 지수로 서울 전셋값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7.18% 올랐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은 1.45%였습니다. 성북구가 11.89%, 노원구가 10.92%로 높았습니다.

9월 셋째 주 수치를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3%, 전세가격은 0.17% 올랐습니다. 전국으로 넓혀도 전세가 0.12%로 매매보다 빠릅니다. 사는 값보다 빌리는 값이 더 가파르게 오르는 구간입니다.

월세도 같이 오릅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62만원으로 한 달 새 1.7% 올랐고, 33제곱미터 안팎 원룸은 69만원으로 6.7% 올랐습니다.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로 가도 피난처가 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계약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 하나

통계를 여러 개 늘어놓았지만 세입자가 당장 쓸 수 있는 정보는 하나로 좁혀집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을 연장할 때, 계약갱신요구권을 쓴 갱신인지 아닌지가 계약서에 드러나야 합니다. 권리를 쓴 갱신이면 인상 폭에 5%라는 천장이 있고, 아니면 없습니다.

매물이 없다는 말은 협상할 자리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법이 정해 둔 천장은 협상으로 얻어 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세와 월세가 정확히 어떻게 다른가요?

전세는 큰돈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매달 돈을 내지 않다가, 나갈 때 그 돈을 돌려받는 방식입니다. 월세는 상대적으로 적은 보증금을 맡기고 매달 돈을 냅니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는 목돈을 묶어 두는 대신 매달 나가는 돈이 없고, 월세는 반대입니다.

Q. 계약갱신요구권은 누구나 쓸 수 있나요?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정해진 기간 안에 집주인에게 알리면 한 번 쓸 수 있고, 그 한 번으로 2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나 그 직계가족이 실제로 그 집에 들어와 살려는 경우 등에는 거절될 수 있습니다. 이미 한 번 쓴 세입자는 다시 쓸 수 없습니다.

Q. 매물 건수는 누가 세는 숫자인가요?

정부 통계가 아니라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올라온 물건을 민간 업체가 집계한 값입니다. 같은 집이 여러 중개소에 중복으로 올라가면 걸러 내는 방식이 업체마다 다릅니다. 방향을 보는 데는 쓸 수 있지만 절대 수치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거래량과 가격은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이 따로 집계합니다.

Q. 전셋값이 오르면 집값도 오르나요?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만 자동은 아닙니다. 전세는 실제로 그 집에 살려는 수요를 반영하고, 매매가는 앞으로의 값까지 반영합니다. 올해 9월 셋째 주처럼 전세가 매매보다 빠르게 오르는 구간은 실거주 수요는 강한데 사겠다는 쪽은 망설이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기도 합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첫째, 세 가지 경로를 나눠 놓았지만 각각이 매물 감소에 얼마씩 기여했는지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 비중을 구하려면 개별 주택 단위 자료가 필요한데 공개돼 있지 않습니다. 만약 입주 물량 감소가 압도적이라면 “공급 문제만은 아니다”라는 이 글의 기조는 약해집니다.

둘째, 갱신계약 증가를 주거 안정의 신호로도 읽었습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어 남는 것과 원해서 남는 것은 통계에서 구분되지 않습니다. 전자가 대부분이라면 갱신 증가는 안정이 아니라 강요된 선택입니다.

셋째, 인상률 분석에 쓴 1107건은 8월 갱신계약 전체가 아니라 직전 계약과 비교가 가능한 일부입니다. 값이 크게 오른 계약이 비교 가능한 쪽에 몰려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74.9%라는 비율은 실제보다 높게 잡힌 값입니다.

넷째, 월세 비중은 각 해 1~2월 누계 기준입니다. 계절에 따라 거래 구성이 달라지므로 연간 수치로 다시 계산하면 증가 폭이 이보다 완만할 수 있습니다.

사색가 J

공개된 자료를 놓고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읽습니다. 의견이나 정정 요청은문의로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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