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책 1631권 사건이 드러낸 베스트셀러 순위 계산법

작가와 출판사 대표가 자기 책 1631권을 5개월에 걸쳐 사들인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전체 판매량 1만 1135권의 14.6%, 주당 74권입니다. 순위표는 몇 주치를 합산했는지에 따라 다른 책을 1위로 올립니다.

사색가 J9분 분량
서점 베스트셀러 진열대에서 책을 꺼내 보는 손님.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서점 베스트셀러 진열대에서 책을 꺼내 보는 손님.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목차 · 7개 단락
  1. 22주에 걸쳐 나뉜 1631권
  2. 2014년에 셈법이 바뀌었습니다
  3. 순위표는 간격을 지웁니다
  4. 한 해 6만 5000종이 나오는 시장에서
  5. 이 건이 드러난 경로
  6. 자주 묻는 질문
  7.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40대 작가와 50대 출판사 대표가 자기 책을 1631권 사들인 혐의를 받습니다. 이 책 전체 판매량 1만 1135권의 14.6%이고, 구매는 약 22주에 걸쳐 있습니다. 주당 74권입니다.

9월 9일 검찰이 두 사람을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혐의가 확정된 단계는 아닙니다. 사재기라고 하면 출간 직후 한 주에 물량을 몰아넣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구매는 2024년 1월에 나온 책을 놓고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전국 서점에 비회원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검찰은 이 책의 분야별 주간 순위가 3·4위권에서 2·3위권으로 올라갔다고 봤습니다. 주당 74권을 보태 순위가 한두 칸 올라가는 구간이라면, 거기서 앞뒤로 붙어 있던 책들의 실제 판매 격차도 주당 수십 권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순위표는 그 간격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책을 고를 때 순위표를 참고한다면, 그 목록이 몇 주치를 합산한 값인지와 전체 순위인지 분야별 순위인지부터 보는 편이 낫습니다.

22주에 걸쳐 나뉜 1631권

3월부터 7월까지는 약 5개월, 22주 안팎입니다.

1631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전체 판매량 대비
14.6%
구매 기간
약 22주
주당 평균
약 74권
순위 변화
3·4위권 → 2·3위권
기간을 22주로 잡은 환산치입니다. 실제 구매가 고르게 분산됐는지는 공소사실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주당 74권. 한 번에 몰아치는 방식이 아닙니다. 서점마다 비회원으로 소량씩 나눠 사는 동선이 공소사실에 들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왜 이렇게 했는지는 순위를 매기는 쪽의 규칙을 보면 짐작이 갑니다.

2014년에 셈법이 바뀌었습니다

교보문고는 2014년 9월 25일 집계부터 베스트셀러 산정 방식을 바꿨습니다. 그전까지 34년간은 직전 1주일 판매량만 썼습니다. 새 방식은 직전 4주를 묶어 최근 주부터 **40%, 30%, 20%, 10%**의 가중치를 주는 가중평균입니다.

주간 순위가 계산되는 범위
2014년 이전
직전 1주일 판매량만 셉니다. 특정 주에 물량을 몰아넣으면 그 주 순위가 올라갑니다.
2014년 9월 이후
직전 4주를 가중평균합니다. 한 주에 몰아넣어도 그 주 몫은 40%로 희석되고, 다음 4주 동안 효과가 서서히 빠집니다.
교보문고 기준이며, 서점마다 산정 방식은 다릅니다.

당시 이 개편의 명분이 사재기 차단이었습니다. 출간 직후 단기간에 물량을 밀어 넣어 순위에 올라타는 방식을 막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결과로 없어진 것은 단기 집중형이지 사재기 자체가 아닙니다. 4주를 평균 내는 규칙 아래에서 순위를 올리려면 4주 넘게 꾸준히 사는 쪽이 유리해집니다. 이번 사건의 5개월이 그 모양입니다.

순위표는 간격을 지웁니다

여기서 더 눈여겨볼 수치는 14.6%가 아니라 주당 74권 쪽입니다.

주당 74권을 보태서 분야별 주간 순위가 한두 칸 올라갔다면, 그 구간에서 인접한 책들 사이의 실제 판매 격차가 주당 수십 권 수준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2위와 4위의 거리가 그 정도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순위표는 이 간격을 표시하지 않습니다. 1위부터 10위까지 같은 간격으로 늘어선 목록만 보여줍니다. 판매량이 두 배 차이 나는 두 칸과 5% 차이 나는 두 칸이 화면에서 똑같이 한 칸으로 보입니다. 서열은 남고 거리는 사라집니다.

같은 성질은 다른 순위표에도 있습니다. 음원 차트, 앱스토어 인기 순위, 박스오피스 순위가 모두 값이 아니라 순서만 공개합니다. 그래서 상위 구간이 촘촘한 목록일수록 적은 물량으로 순위를 흔들 수 있고, 그 사실은 목록을 보는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서점 진열대의 한 칸만 비어 있고 양옆에 책이 꽂혀 있는 모습
칸의 순서는 보이지만 칸 사이의 거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한 해 6만 5000종이 나오는 시장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5월 29일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25년 국내 신간은 6만 4991종, 총 발행부수는 7302만 8500부였습니다. 종당 평균 발행부수는 1124부입니다. 발행부수는 찍은 양이지 팔린 양이 아니므로 판매량은 이보다 적습니다.

이 시장에서 1만 1135권이 팔린 책은 평균의 열 배쯤 되는 성적입니다. 그런 책도 순위 두어 칸은 1631권으로 움직였습니다.

순위가 마케팅 자산이 되는 구조에서는 그 정도 비용이 계산에 맞습니다. 책값을 2만 원으로 잡으면 1631권은 3200만 원 남짓이고, 그중 상당 부분은 자기 출판사로 되돌아옵니다. 반면 걸렸을 때의 벌은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2014년 7월에 1000만 원 이하 과태료에서 지금 수준으로 올린 것이 현재까지의 마지막 강화입니다.

이 건이 드러난 경로

수사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고발로 시작됐습니다. 진흥원은 2012년부터 출판물 불법유통·사재기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2014년부터는 신고·고발에 1건당 200만 원 이하의 포상금을 줍니다.

적발 경로가 신고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점의 판매 데이터를 상시로 들여다보는 기관은 없습니다. 이번처럼 비회원 결제로 흩어 놓은 구매를 판매 기록만으로 자동 걸러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확인된 것은 “사재기가 적발됐다”이지 “사재기가 얼마나 있는가”가 아닙니다. 후자를 알려면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건까지 셀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공개된 자료에는 그런 수치가 없습니다.

읽는 쪽에서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습니다. 순위표를 볼 때 그 목록이 몇 주치를 합산한 것인지, 전체 순위인지 분야별 순위인지를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분야를 잘게 나눌수록 같은 물량으로 더 높은 칸에 닿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자기 책을 사는 것도 불법인가요?

작가가 자기 책을 사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이 금지하는 것은 간행물의 판매량을 조작할 목적으로 사들이는 행위입니다. 이번 기소에서 비회원 결제로 전국 서점에 분산한 동선이 쟁점이 된 것도 목적을 가리는 정황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Q. 서점마다 순위 산정 방식이 다른가요?

다릅니다. 이 글에서 다룬 4주 가중평균은 교보문고가 2014년에 도입한 방식이고, 다른 서점은 각자의 기준을 씁니다. 같은 주에 서점별 베스트셀러 1위가 다른 책으로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첫째, 주당 74권은 환산치입니다. 공소사실에는 구매 시점의 분포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특정 몇 주에 몰려 있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집계 방식에 맞춘 분산”이라는 이 글의 해석은 약해집니다.

둘째, 문제의 순위표가 어느 서점 것인지 보도만으로는 특정되지 않습니다. 4주 가중평균은 교보문고의 방식이므로, 순위가 움직인 곳이 다른 서점이었다면 계산의 전제가 달라집니다.

셋째, 순위 상승분을 사재기 물량만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같은 기간의 광고, 언론 노출, 저자의 기존 독자층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고, 1631권이 없었어도 순위가 올라갔을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한 공개 자료
사색가 J

공개된 자료를 놓고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읽습니다. 의견이나 정정 요청은문의로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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