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를 단속하면 그 표는 누구에게 가나 — 오디세이 예매 대란

정가 2만원짜리 «오디세이» 아이맥스 표가 중고거래 앱에서 3만~4만원에 오르내립니다. 온라인 되팔이를 처벌하는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은 대상이 공연과 스포츠여서 영화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의 대상 밖에 있습니다.

사색가 J12분 분량
좌석이 모두 비어 있는 대형 상영관 — 이 자리를 누가 갖는지가 이 글의 질문입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좌석이 모두 비어 있는 대형 상영관 — 이 자리를 누가 갖는지가 이 글의 질문입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목차 · 10개 단락
  1. 법이 덮고 있는 범위
  2. 암표는 왜 생기나
  3. 그러니까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4. 단속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5. 그래서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6. 그리고 아무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7. 그래서 단속은 옳은가
  8.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9. 자주 묻는 질문
  10. 단속이 바꾸는 것은 표의 방향

영화 «오디세이» 아이맥스 상영관 표는 정가 2만원인데 중고거래 앱에서 3만~4만원에 오르내립니다. 좋은 자리는 그보다 훨씬 높게 붙습니다. 용산 아이맥스는 624석이고, 그 표를 원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정부가 단속에 나섰다는 소식으로 읽힙니다. 막으면 표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전제가 함께 깔립니다.

지금 영화 암표를 온라인에서 처벌할 법이 없습니다. 경범죄처벌법은 현장 거래만 보고,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은 온라인을 덮지만 대상이 공연과 스포츠입니다. 영화는 빠져 있습니다. 단속해도 624석은 624석이니 표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고, 순서를 정하는 규칙이 돈에서 속도로 되돌아갑니다.

법이 덮고 있는 범위

8월 2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사람 대신 예매 화면을 자동으로 눌러 주는 프로그램, 이른바 매크로를 썼는지와 관계없이 모든 무단 판매를 막겠다는 내용입니다. 판매액의 2배에서 50배까지 과징금을 매기겠다는 방침도 함께 나왔습니다.

암표를 다루는 법은 세 개입니다. 각각 덮는 영역이 다릅니다.

법 무엇을 금지하나 처벌
경범죄처벌법 현장에서 웃돈 받고 되파는 행위 20만원 이하 벌금
공연법 (2024년 3월 시행) 매크로로 산 공연 입장권의 부정판매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국민체육진흥법 매크로로 산 스포츠 입장권의 부정판매 같음

세 칸을 겹쳐 놓으면 빈자리가 보입니다.

매크로를 이용한 온라인 되팔이를 처벌할 수 있는가
공연 · 콘서트  가능 스포츠 경기  가능 영화  근거 없음

경범죄처벌법은 현장 거래만 봅니다. 중고거래 앱에서 벌어지는 일은 잡지 못합니다.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은 온라인을 덮지만 적용 대상이 공연과 스포츠입니다. 영화는 어느 쪽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문체부가 이번에 손본 것도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의 시행령입니다. 그리고 장관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신속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단속하겠다는 선언이 먼저 나왔고, 근거가 될 법은 아직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흠잡기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법을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여론에 답해야 하는 것도 정부의 일입니다. 다만 지금 벌어지는 일이 ’법 집행’이 아니라 ’입법 예고’에 가깝다는 것은 알고 읽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건, 어디에 선을 그을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암표는 왜 생기나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섭니다.

용산 아이맥스는 624석입니다. 그 표를 원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가격은 2만원에 고정돼 있습니다.

624석
용산 아이맥스의 좌석 수. 가격은 2만원에 고정돼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이 좌석보다 많은데 가격이 묶여 있으면, 가격이 하지 못한 일을 다른 것이 대신합니다. 누군가는 갖고 누군가는 못 갖는데, 그 순서를 정하는 규칙이 따로 필요해집니다.

지금 그 규칙은 속도입니다. 예매가 열리는 순간 더 빨리 누른 사람이 갖습니다.

탁자 위에서 휴대폰과 노트북을 든 여러 사람의 손
예매가 열리는 순간. 이 규칙에서는 더 빨리 누른 사람이 갖습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암표상은 이 규칙을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속도로 표를 확보한 뒤, 그것을 돈으로 바꿉니다. 속도라는 화폐를 현금이라는 화폐로 환전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단속을 하면 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갈 뿐입니다.

그래서 “암표를 단속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실은 이 질문입니다. 624석을 누가 가져야 하는가.

가능한 답은 크게 셋입니다.

같은 좌석, 다른 배분 규칙 — 규칙마다 이기는 사람이 다릅니다
① 속도순 — 지금 방식
예매 오픈에 맞출 시간이 있고, 회선과 장비가 빠르고, 손이 빠른 사람이 갖습니다.
② 돈순 — 암표 시장 또는 시장가 판매
더 많이 낼 의사가 있는 사람이 갖습니다. 그 차액은 암표상이 갖거나, 극장이 갖습니다.
③ 운순 — 추첨
응모한 사람 중 무작위로 갖습니다. 속도도 돈도 소용이 없습니다.

세 규칙 모두 624명에게 표를 줍니다. 다만 매번 다른 624명입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①번을 ’공정’의 기본값으로 여깁니다. 줄을 서서 먼저 온 사람이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온라인 예매에서 ’먼저’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시간 여유와 장비에 가깝습니다. 평일 오후 2시 예매 오픈에 맞출 수 있는 사람과 그 시간에 일하는 사람은 같은 줄에 서 있지 않습니다.

②번을 불편해하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돈이 순서를 정하는 데 대한 거부감입니다. ①번에서도 무언가가 순서를 정하고 있고, 그 무언가도 고르게 분포하지 않습니다.

’공정하게 하자’는 말은 이 셋 중 무엇을 고를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논쟁은 대개 그 말에서 멈춥니다.

단속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제 판단을 적기 전에 양쪽 논거를 놓겠습니다.

단속해야 한다는 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매크로는 규칙 위반입니다. 사람과 기계가 같은 줄에 서면 경쟁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되팔이가 직업이 되면 초과수요를 인위적으로 키우고, 문화 접근성 자체가 소득에 좌우됩니다. 극장이 정가를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익을 제3자가 가져갑니다.

과도하다는 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가에 산 물건을 되파는 것은 원칙적으로 자유입니다. 못 가게 된 사람이 표를 넘기지 못하면 그 좌석은 그냥 빕니다. 가격이 수요보다 낮은 것이 원인인데 증상만 다룹니다. 단속에 드는 행정 비용이 실익보다 클 수 있습니다.

양쪽 다 일리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두 주장은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쪽은 주로 매크로를, 뒤쪽은 주로 개인 간 되팔기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이 구분이 이번 발표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체부는 “매크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무단 판매를 막겠다고 했습니다. 이 한 구절로 두 가지가 한 묶음이 됩니다.

  • 기계로 표를 쓸어 담아 되파는 것 — 다른 사람의 기회를 기술로 빼앗는 행위
  • 못 가게 된 사람이 정가에 표를 넘기는 것 — 좌석이 비는 것을 막는 행위
관객이 가득 찬 상영관에서 가운데 한 자리만 비어 있는 모습
넘기지 못한 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가 빌 뿐입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둘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앞의 것을 막는 데는 반대가 많지 않습니다. 뒤의 것까지 막으면 표를 못 쓰게 된 사람도, 그 표로 갈 수 있었던 사람도 함께 잃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질 법에서 실제로 봐야 할 것은 ’암표를 근절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정가 양도는 허용되는가. 허용된다면 어떤 절차로 하는가
  • 매크로 사용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못 하면 결과(되팔았다)만 보고 처벌할 수밖에 없습니다
  • 누구를 처벌하는가. 전업 되팔이인가, 한 장 넘긴 개인인가

그리고 아무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전부 624석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습니다. 단속도, 추첨도, 시장가 판매도 전부 나누는 방법입니다.

나눌 것을 늘리는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태의 진짜 희소성은 좌석이 아니라 상영 형식입니다. 특정 규격의 상영관은 전 세계에 몇 곳 없고, 그래서 그 경험을 원하는 수요가 몇 안 되는 관으로 몰립니다. 단속을 아무리 촘촘히 해도 624석은 624석입니다.

배분은 빠르고 눈에 보입니다. 공급은 느리고 비싸고 표가 안 납니다. 그래서 논쟁은 늘 배분 쪽으로 쏠립니다. 주택도, 대학 정원도, 응급실 병상도 같은 모양으로 논쟁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단속은 옳은가

제 생각을 적자면 이렇습니다. 다른 판단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매크로 단속은 근거가 분명합니다. 이건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 위반을 잡는 것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규칙이 ’속도’라면, 기계로 속도를 사는 것은 그 규칙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개인 간 정가 양도까지 묶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막아서 생기는 이득과 잃는 것을 따로 재야 합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암표 근절’이라는 말 아래 함께 통과되기 쉽습니다.

단속이 배분 방식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점도 같이 봐야 합니다. 암표를 막으면 규칙은 ②번에서 ①번으로 돌아갑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①번이 우리가 원하는 규칙인지는 별도의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 논의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 저는 단속의 효과를 재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누가 갖는가’라는 구조를 다뤘지만, 실제로 단속이 되팔이를 얼마나 줄이는지에 대한 자료는 보지 못했습니다. 효과가 크다면 계산이 달라집니다.
  • 극장이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유를 단순화했습니다. 정가 유지에는 배급 계약, 관객 정책, 브랜드 등 여러 이유가 있고, 저는 그 내부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속도순 배분이 시간 여유에 좌우된다’는 것은 추론입니다. 예매 성공자의 구성을 보여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 아직 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발표와 현행법을 놓고 쓴 것이고, 실제 개정안의 내용에 따라 평가는 달라져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지금 영화표를 웃돈 받고 팔면 처벌받나요?

현장에서 직접 파는 경우는 경범죄처벌법으로 2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되팔이는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이 공연·스포츠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영화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문체부가 영화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입니다.

Q. 매크로를 안 썼는데도 처벌되나요?

현행 공연법은 매크로 사용을 요건으로 합니다. 이번 발표는 “매크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막겠다는 방향을 담고 있어, 앞으로 만들어질 규정에서 이 요건이 어떻게 정리될지가 관건입니다.

Q. 못 가게 돼서 정가에 넘기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

현재로서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정가 양도를 예외로 둘지, 공식 양도 창구를 만들지가 앞으로 정해질 부분입니다.

Q. 그냥 가격을 올리면 되지 않나요?

그러면 암표는 줄어들지만 배분 규칙이 ②번, 곧 돈순으로 바뀝니다. 극장이 차액을 갖는다는 점이 달라질 뿐, 못 보게 되는 사람은 여전히 생깁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자료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단속이 바꾸는 것은 표의 방향

암표 단속은 표를 없애지 않습니다. 표가 가는 방향을 바꿉니다.

그래서 “단속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언제나 그 아래에 다른 질문을 감추고 있습니다. 624석은 원래 누구 것이어야 하는가. 빨리 누른 사람인가, 많이 낼 사람인가, 운이 좋은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단속만 강화하면, 우리는 규칙을 고른 것이 아니라 고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르지 않으면 기본값이 이깁니다. 지금의 기본값은 속도입니다.

사색가 J

공개된 자료를 놓고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읽습니다. 의견이나 정정 요청은문의로 보내 주세요.

이 블로그의 글은 공개된 자료만을 근거로 씁니다. 개인 자격으로 운영하며 어떤 조직의 입장과도 무관하고, 비공개 정보나 취재원에 관한 정보는 다루지 않습니다. 운영 원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