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폐암 첫 배상 판결, 조리흄에는 아직 노출 기준이 없다
이미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조리사 9명이 다시 소송을 내 1인당 1000만 원을 받게 됐습니다. 법원은 조리흄 농도가 아니라 환기설비를 갖췄는지와 보호구를 줬는지를 보고 판단했습니다. 산재 승인을 받은 뒤에도 위자료와 메워지지 않은 소득을 받을 권리가 따로 남습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린 조리사 9명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겨 1인당 1000만 원을 받게 됐습니다. 9명 모두 이미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승인은 2022년부터 2024년 사이에 났고, 대부분 급식실에서 12년 넘게 일했습니다.
산재가 인정됐으면 보상은 거기서 끝난 것으로 읽힙니다. 인정받은 사람이 왜 다시 법정에 서야 했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위자료가 빠집니다. 아픈 기간과 남은 삶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값으로 매긴 돈, 메워지지 않은 소득의 나머지는 산재보험이 아니라 별도의 민사소송에서만 나옵니다. 그 소송에서는 사용자가 안전을 지킬 의무를 다했는지를 따집니다. 산재 심사에서는 묻지 않는 질문입니다.
산재와 손해배상은 서로 다른 문입니다
1인당 1000만 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은 9월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났습니다. 광주광역시·전라남도·부산광역시·경상북도가 피고였고, 지자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일하다 다치거나 병을 얻은 사람에게 치료비와 잃어버린 소득을 메워주는 제도입니다. 치료에 드는 돈, 일을 못 하는 동안의 임금 일부, 몸에 남은 장해에 대한 보상이 여기서 나옵니다.
이 제도는 사용자가 잘못했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일하다 생긴 병이라는 것만 인정되면 지급합니다. 누구의 책임인지 가리느라 치료가 늦어지는 일을 막으려고 그렇게 설계됐습니다.
대신 빠지는 항목이 있습니다. 위자료입니다. 아픈 기간과 남은 삶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값으로 매긴 돈은 산재보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소득을 메우는 부분도 전액이 아니라 일정 비율까지입니다.
그 나머지를 받으려면 별도의 민사소송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민사소송에서는 사용자가 안전을 지킬 의무를 다했는지를 따집니다. 산재에서 묻지 않던 질문을 여기서 처음 묻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이렇게 됩니다. 산재로 인정받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인정받은 뒤에 다시 한 번 다른 기준의 재판을 거쳐야 나머지가 나옵니다.
학교급식 조리사의 폐암이 산재로 처음 인정된 것은 2021년 2월입니다. 그 뒤 2025년 6월까지 213명이 신청해 178명이 인정받았습니다. 승인율 83.6%입니다. 이번 판결의 원고는 그 가운데 9명이었습니다.
배상 책임을 진 쪽이 시·도였던 까닭
판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피고입니다. 광주광역시가 4명분, 전라남도가 2명분, 부산광역시가 2명분, 경상북도가 1명분을 물게 됐습니다. 국가에 대한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실무사는 교육공무직입니다. 채용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시·도 교육감입니다. 교육감은 법적으로 그 시·도에 속한 기관이어서, 소송에서 돈을 물어야 하는 상대는 시·도가 됩니다. 교육부나 국가가 아닙니다.
이 구분이 실제로 갈라놓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 급식실에서 일했느냐에 따라 상대해야 할 피고가 달라지고, 그 지역 교육청이 환기설비에 얼마를 썼는지가 재판의 쟁점이 됩니다. 같은 병을 같은 원인으로 얻어도 소송은 지역별로 따로 굴러갑니다.
법원이 인정한 잘못은 환기시설이 충분하지 않았고 보호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날개가 멈춰 있는 벽걸이 환풍기.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기준이 없는 물질을 관리한다는 것
조리흄은 높은 온도에서 기름으로 튀기거나 볶을 때 생기는 아주 작은 입자와 가스를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연기보다 훨씬 작은 입자가 섞여 있어서 숨을 쉴 때 폐 깊은 곳까지 들어갑니다.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조리흄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측정 방법도, 몇 이상이면 위험하다고 못 박는 노출 기준도 아직 없습니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실무에서 이렇게 작동합니다. 사업장에 유해물질 기준이 정해져 있으면 관리는 단순해집니다. 측정하고, 넘으면 고치고, 안 고치면 법을 어긴 것이 됩니다. 기준이 없으면 그 고리가 끊깁니다. 얼마나 나쁜지를 숫자로 말할 수 없고, 넘었는지를 판정할 수 없고,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벗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다른 길로 갔습니다. 조리흄 농도가 얼마였는지를 따지는 대신, 환기설비를 갖췄는지와 보호구를 줬는지라는 일반적인 안전 의무를 봤습니다. 물질에 기준이 없으니 설비와 조치를 본 것입니다.
설비 쪽 사정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환기시설을 고친 뒤에도 성능 기준에 못 미치는 학교가 18%가량 된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후드를 새로 달았는데 소음이 너무 커서 조리 중에 꺼놓게 된다는 현장 증언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설비가 있는 것과 작동하는 것이 같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들
이 판결은 1심입니다. 항소할 수 있고, 지자체들이 어떻게 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의 요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남에서는 8월 31일 기준으로 급식 노동자 21명이 폐암 진단을 받았고 그중 13명이 산재 승인을, 2명이 사망 판정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9월에 경남교육청에도 같은 기준의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이번 판결의 원고에 경남 소속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설비 교체는 지역마다 속도가 다릅니다. 광주의 경우 지난해 3월까지 127개교 공사를 마쳤고 2027년까지 319개교로 넓히는 계획을 두고 있습니다.
인력 쪽에서는 별도의 기준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조리 인력 한 명이 맡는 인원을 초등학교 77.5명, 중·고·특수학교 64.7명으로 하자는 제안이 나와 있습니다. 전국 6207개 직영 급식 학교에 그대로 적용하면 2만 423명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올해 1월 29일 국회를 통과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관련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어, 실제 숫자는 이후 절차에서 정해집니다.
한 사람이 튀김솥 앞에 서는 시간과 조리흄이 빠져나가는 속도 사이의 관계는 아직 숫자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번 판결이 그 관계를 정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관계를 관리할 의무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처음으로 법정에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산재보험과 민사 손해배상의 관계를 단순하게 정리했습니다. 실제로는 이미 받은 산재 급여만큼을 손해배상액에서 빼는 절차가 있고, 어느 항목을 얼마나 빼는지는 사건마다 다툼이 됩니다. 1인당 1000만 원이라는 금액이 위자료만인지 다른 항목이 섞인 것인지는 판결문 전문을 보지 않고는 정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판결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보도를 통해서만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산재 승인율 83.6%라는 숫자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이 값은 신청한 사람 가운데 인정받은 비율이지,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린 사람 가운데 인정받은 비율이 아닙니다. 아예 신청하지 않은 사람과 신청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분모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전체 피해 규모를 이 비율로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조리흄에 노출 기준이 없다는 대목은 현재 시점의 자료를 근거로 적었습니다. 관련 연구는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고,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개별 물질 중에는 이미 기준이 정해진 것도 있습니다. “조리흄 전체를 하나의 물질로 묶어 관리하는 기준이 없다”는 뜻으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구분을 충분히 세밀하게 다루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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