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앨범,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 최초 수상 — 영어권 시장은 성장률 최하위
스페인어 앨범이 처음으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습니다. 비영어권 음악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음악이 팔리는 방식이 바뀌면서 영어라는 관문이 필요 없어진 쪽에 가깝습니다. IFPI와 루미네이트의 수치가 그 변화를 보여 줍니다.

목차 · 8개 단락
2026년 2월 2일, 그래미 시상식에서 배드 버니의 «DeBÍ TiRAR MáS FOToS»가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습니다. 스페인어로 된 앨범이 이 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따라붙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K팝이 세계를 정복했다”, “라틴 음악이 미국을 삼켰다”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문장은 이상하게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 음악이 잘나가는지는 알려 주지만, 왜 하필 지금인지는 알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영어권에 좋은 음악이 없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없던 건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이 돈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공개된 두 자료가 그 길이 언제 열렸는지를 보여 줍니다. 미국 안에서 영어 음악의 스트리밍 비중은 3년 만에 88.8%에서 86.0%로 내려갔고, 세계 음반 시장의 성장률은 영어를 쓰지 않는 시장일수록 높았습니다. 움직인 것은 취향이 아니라 음악이 팔리는 방식입니다.
자료 하나: 성장률이 영어권에서 먼 순서대로 줄을 선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2026년 3월 낸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음반 산업 매출은 317억 달러로 6.4% 늘었습니다. 11년 연속 성장이고, 300억 달러를 넘긴 건 처음입니다.
흥미로운 건 총액이 아니라 지역별 성장률의 순서입니다.
이 순서를 다시 읽어 보면 이렇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시장이 정확히 맨 아래 두 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캐나다가 3.5%, 오세아니아가 1.5%. 반대편 끝에는 라틴아메리카가 17.1%로 있습니다. 다섯 배 가까운 차이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있습니다. 성장률이 높다고 시장까지 큰 것은 아닙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15.2% 늘었지만 총액은 1억 2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600억 원에 그쳐 세계 시장의 0.4%에 못 미칩니다. 유럽 한 곳이 세계의 30.4%입니다. 그러니 이 표는 “누가 큰가”가 아니라 “어디가 아직 자라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표입니다.
자료 둘: 미국 안에서도 영어가 밀린다
두 번째 자료가 더 결정적입니다. 음악 데이터 회사 루미네이트가 집계한 미국 내 스트리밍의 언어별 비중입니다. 다른 나라가 아니라 영어의 본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 언어 | 2023년 | 2026년 (연중 누계) |
|---|---|---|
| 영어 | 88.8% | 86.0% |
| 스페인어 | 8.1% | 9.5% |
| 한국어 | 0.7% | 1.1% |
| 그 밖의 언어 전부 | 2.4% | 3.4% |
3년 만에 2.8퍼센트포인트. 작아 보이지만 스트리밍은 규모가 큰 시장이라 이 정도 이동이 수십억 회 재생에 해당합니다. 스페인어는 이 기간에 미국 스트리밍 열 번 중 한 번에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눈여겨볼 건 맨 아랫줄입니다. “그 밖의 언어 전부”가 2.4%에서 3.4%로 늘었습니다. 스페인어나 한국어처럼 스타 한 명으로 설명되는 항목과 다릅니다. 여러 언어가 조금씩 동시에 올라갔다는 뜻이고, 이건 개별 아티스트의 성공이 아니라 바닥이 기울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구조: 세 가지가 동시에 무너졌다
숫자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봅시다. 제가 보기에 세 가지가 맞물려 있습니다.
첫째, 유통이 공짜가 됐습니다.
예전에 음악이 국경을 넘으려면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었습니다. 현지 라디오 편성표, 음반 매장의 매대, 방송사의 방영 결정. 이 관문은 나라마다 따로 있었고, 하나씩 뚫으려면 현지 유통사와 계약해야 했습니다. 돈과 시간이 들었고, 그래서 가장 큰 시장에서 통할 만한 음악부터 뚫었습니다. 그게 영어였습니다.
스트리밍에서는 이 관문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한 번 올리면 190여 개국에 동시에 놓입니다. 관문이 없어진 게 아니라 관문의 종류가 바뀐 겁니다. 유통에서 발견으로.
둘째, 추천 알고리즘은 언어를 모릅니다.
발견의 관문을 지키는 건 이제 사람이 아니라 추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영어 노래”라는 범주로 세상을 나누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듣는 사람들을 묶고, 그 묶음 안에서 다음 곡을 밀어 줄 뿐입니다.
편성자에게 언어는 첫 번째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우리 청취자가 못 알아듣는 가사”는 그 자체로 탈락 사유였으니까요. 추천 시스템에게 언어는 수많은 변수 중 하나로 내려앉았습니다. 분류축에서 빠진 겁니다.
셋째, 그리고 이게 가장 큰 이유인데 — 영어권에 더 팔 곳이 없습니다.
미국·캐나다 3.5%, 오세아니아 1.5%라는 숫자를 산업의 눈으로 다시 읽어 봅시다. 이건 “인기가 식었다”가 아니라 “살 사람이 이미 다 샀다”는 뜻입니다. 스트리밍 구독은 한 사람이 하나씩 드는 것이고, 들 만한 사람은 대부분 이미 들었습니다.
음반사도 플랫폼도 주주에게 성장을 보여 줘야 합니다. 성장이 남아 있는 곳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뿐입니다. 그래서 자본이 그리로 갑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그 지역에서 새로 구독을 시작한 사람은 그 지역 음악을 듣습니다. 브라질에서 새로 가입한 사람은 브라질 음악을 듣고, 나이지리아에서 가입한 사람은 나이지리아 음악을 듣습니다. 성장을 좇아 비영어권으로 들어간 자본은, 들어간 그 자리에서 비영어권 음악에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영어권 음악의 부상은 취향의 결과가 아니라 산업의 산수입니다.
이 셈법으로 되돌아보면 배드 버니의 수상도 다르게 읽힙니다. 그의 앨범이 갑자기 좋아져서 상을 받은 게 아니라, 스페인어 음악을 듣는 사람이 상을 주는 쪽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됐기 때문에 가까울 겁니다. 상은 대개 변화를 만들지 않고, 변화가 끝난 다음에 그것을 확인해 줍니다.
그래서 판이 커진 겁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싶습니다. 이 변화를 자리 뺏기로 읽는 시선입니다. 비영어권 음악이 뜬 만큼 영어권 음악이 밀려났다는 식이죠.
숫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미국·캐나다 시장은 줄어든 게 아니라 3.5% 늘었습니다. 유럽도 5.6% 늘었습니다. 아무도 줄지 않았는데 어떤 곳은 많이 늘었습니다.
즉 나눠 먹을 파이를 두고 다툰 게 아니라, 없던 자리에 파이가 새로 생긴 겁니다. 그리고 새로 생긴 그 자리가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게 “K팝의 성공”이나 “라틴 음악의 역습” 같은 표현이 놓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표현은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경기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경기장이 넓어진 쪽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무엇을 봐야 하나
이 구조가 계속된다면 몇 가지가 따라옵니다. 예측이라기보다 지켜볼 지점으로 적습니다.
- 비영어권 안에서의 서열이 생깁니다. 지금은 “영어 대 비영어”로 뭉뚱그려 말하지만, 스페인어 9.5%와 한국어 1.1%는 전혀 다른 크기입니다. 다음 단계의 경쟁은 영어와의 경쟁이 아니라 비영어권 언어들 사이의 경쟁일 가능성이 큽니다.
- 성장률은 언젠가 내려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17.1%는 시장이 젊기 때문에 나오는 숫자입니다. 그 시장도 포화에 가까워지면 미국처럼 한 자릿수로 떨어집니다. 그때 산업은 또 다음 성장처를 찾아 나설 겁니다.
- 제도는 늦게 따라옵니다. 차트, 시상식, 장르 분류 같은 제도는 여전히 언어와 지역으로 칸을 나눠 두고 있습니다. 시장이 언어를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게 된 뒤에도 제도의 칸은 한동안 남습니다. 그 간극에서 계속 잡음이 생길 겁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 성장률과 점유율을 섞어 읽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 글은 성장률을 근거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고 말했지만, 절대 규모로 보면 여전히 영어권과 유럽이 시장의 대부분입니다. 이동은 방향을 말할 뿐 현재 크기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 인과가 반대일 수 있습니다. 저는 “성장 여지가 없어서 자본이 비영어권으로 갔다”고 썼지만, 반대로 비영어권 음악이 먼저 인기를 얻어서 그쪽에 투자가 따라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공개 자료만으로 선후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 미국 한 나라의 언어 비중으로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루미네이트 수치는 미국 시장 데이터입니다.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이라 신호로서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세계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증거로 쓰기는 어렵습니다.
- 3년은 짧습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의 흐름이고, 한두 명의 대형 아티스트가 만든 일시적 변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래서 영어 음악의 시대는 끝난 건가요?
아닙니다. 미국 스트리밍의 86%가 여전히 영어이고, 그 비중이 줄어드는 속도는 연 1퍼센트포인트 안팎입니다. 끝나는 게 아니라 독점이 아니게 되는 중이라고 보는 쪽이 정확합니다.
Q. 세계 음악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11년 연속 성장했고 2025년에 317억 달러로 처음 3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다만 이 숫자는 음반 산업 매출이고, 공연·굿즈·저작권 수입은 따로 집계됩니다.
Q. 왜 하필 스페인어와 한국어가 두드러지나요?
두 언어는 사정이 다릅니다. 스페인어는 미국 안에 대규모 모국어 인구가 있다는 점이 큽니다. 한국어는 그런 국내 기반 없이 순수하게 수출로 만든 숫자라 성격이 다릅니다. 같은 표에 나란히 있다고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나간 게 아니라 새로 생긴 시장
비영어권 음악이 세계로 나갔다기보다는, 세계가 영어권 바깥에서 새로 만들어졌고, 그 새 시장이 자기 언어로 노래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영어권은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혼자였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만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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