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은 왜 아직 막혀 있나 — 미사일이 아니라 보험료가 만든 봉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배에 붙는 전쟁위험보험료가 40배로 올랐습니다. 이란을 밀어낸 것은 미군 함대가 아니라 런던 보험시장의 가격표입니다. 배는 보험이 없으면 항구를 떠나지 못합니다.

사색가 J20분 분량
해질 무렵 양쪽에서 산이 밀고 들어오는 좁은 바닷길.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해질 무렵 양쪽에서 산이 밀고 들어오는 좁은 바닷길.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목차 · 12개 단락
  1. 먼저, 이 해협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2. 6개월 동안 일어난 일
  3. 배는 보험이 없으면 아예 못 뜹니다
  4. 전쟁위험보험료가 40배로 뛰었습니다
  5. 그리고 여기서 구조가 드러납니다
  6. “이란이 통제권을 잃었다”는 기사, 어떻게 읽어야 할까
  7. 보험업계의 반론
  8. 한국에 오는 청구서
  9. 이 사태가 진짜로 바꿔 놓는 것
  10.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11. 자주 묻는 질문
  12. 해협을 막은 보험료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배에 붙는 전쟁위험보험료가 40배로 올랐습니다. 값을 매긴 곳은 런던 보험시장입니다. 해협은 여전히 이란 코앞에 있고, 이란 혁명수비대도 그대로 거기 있습니다.

8월 들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잃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미군이 이란을 밀어낸 것도 아니고, 이란이 물러나겠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둘 다 없었습니다.

이란에게서 해협을 빼앗아 간 것은 보험사입니다. 배는 보험이 없으면 항구를 떠나지 못하고, 보험료를 정하는 쪽이 어느 바다를 쓸 수 있는지를 정합니다. 통제권이라는 말이 군함에서 가격표로 옮겨 간 자리입니다.

먼저, 이 해협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잇는 좁은 바닷길입니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이 39km. 서울에서 수원 정도 거리입니다.

이 좁은 길로 전 세계 해상 원유의 약 20~25%, LNG의 약 20%가 지나갑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이라크가 수출하는 기름과 가스가 전부 여기를 통과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개념도 — 축척과 해안선은 단순화했습니다
이란 아랍에미리트 오만 페르시아만 오만만 → 인도양 가장 좁은 곳 39km 기존 항로 오만 임시 항로

한국은 특히 취약합니다. 에너지의 94%를 수입하고, 그중 원유의 약 70%가 이 해협을 지납니다. 카타르에서 들여오는 LNG는 아예 우회로가 없습니다. 반도체 공정에 쓰는 헬륨도 이 LNG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이라 같은 병목에 걸립니다.

70%
한국 원유 수입 중 이 해협 통과 비중
94%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
0
카타르산 LNG의 우회 항로

즉 이 글에 나오는 숫자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시차를 두고 우리 주유소 가격표와 전기요금 고지서에 도착하는 숫자입니다.

6개월 동안 일어난 일

시점 일어난 일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란이 통행 금지 경고
3월 사실상 폐쇄. 두바이유가 배럴당 166달러로 사상 최고
3월 말 이란 의회, 해협 통행료 징수안 승인
4월 미국, 유조선 대상 재보험 보증 프로그램 발표 (이후 400억달러로 확대)
4~5월 이란, 통행료 실제 징수 시작. 선박당 150만~200만달러 수준
6월 24일 오만과 국제해사기구(IMO)가 이란 연안을 피하는 임시 항로 개설
7월 중순 트럼프 “미군이 지켜줄 테니 화물값의 20%를 내라” → IMO “법적 근거 없다”
8월 4일 세계 8개 선주단체, 통항료 부과 반대 공동 성명
8월 중순 미국·이란 임시 합의 만료. 후속 합의 없음
화물을 싣지 않아 흘수선이 높이 뜬 대형 유조선
기름을 싣지 않은 유조선은 이렇게 높이 뜹니다. 지금 이 바다에서 흔한 풍경입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여섯 달 동안 폭탄, 휴전, 통행료, 새 항로, 재보험, 성명이 차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통행량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선박이 내보내는 위치 신호를 모아 어디로 얼마나 실려 가는지 집계하는 해운 데이터 회사 케이플러에 따르면, 하루 통과 선박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서 십수 척 사이를 오갑니다. 전쟁 전 하루 130척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하루 평균 통과 선박
전쟁 전 약 130척
현재 10척 안팎

무엇이 배를 멈춰 세우고 있는지가 이 글의 질문입니다.

배는 보험이 없으면 아예 못 뜹니다

기본 개념 하나만 알고 가면 나머지가 다 이해됩니다.

배 한 척 값이 1000억원대입니다. 실린 기름도 수백억원어치죠. 사고가 나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회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물을 맡기는 정유사도, 배 살 돈을 빌려준 은행도 “보험 없으면 안 된다”를 계약서에 못 박아 둡니다.

보험이 끊기면 배를 띄우는 순간 계약 위반입니다. 선장이 아무리 갈 수 있다고 판단해도 갈 수가 없습니다.

배가 어디로 갈지 정하는 건 선장이 아니라 보험사인 셈입니다. 평소에는 이 사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험료가 싸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쟁위험보험료가 40배로 뛰었습니다

서류와 표가 널린 보험 인수 실무자의 책상
해협을 막은 것은 이 책상 위에서 매주 새로 계산됩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전쟁위험보험료는 전쟁이 벌어진 바다를 지날 때 따로 내는 돈입니다. 평소엔 배값의 0.2% 정도로 거의 형식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게 지금은 배값의 7.5~10% 수준으로 매겨집니다. 최대 40배가 오른 셈입니다.

40배
전쟁위험보험료율 — 평시 배값의 0.2% 에서 현재 7.5~10% 로

숫자가 커서 실감이 안 나니 우리 배 이야기로 바꿔 보겠습니다. 국적선사의 배 한 척이 호르무즈를 딱 한 번 지나면서 보험료로만 약 30억원을 냈다는 보도가 5월에 나왔습니다. 한 번 지나가는 값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구조가 드러납니다

이란이 요구한 통행료는 선박당 150만~200만달러, 환율을 감안하면 약 20억~28억원입니다.

같은 배가 지금 보험사에 내는 돈은 최대 1000만달러, 약 138억원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1회 통과 비용 — 선박 1척(선가 1000억원대) 기준
평시 보험료 약 2억원
이란 통행료 약 28억원
현재 보험료 최대 138억원

이란한테 내는 돈보다 보험사에 내는 돈이 5배 가까이 비쌉니다.

선사 입장에선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란에 통행료를 내고 그 앞을 지나느니, 보험료가 싼 남쪽 항로로 돌아가는 편이 낫습니다. 이란이 통행료를 아무리 잘 설계해도, 그 옆에 붙은 보험료가 다섯 배면 이란의 창구에는 손님이 오지 않습니다.

이란이 힘으로 밀린 게 아닙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린 겁니다.

“이란이 통제권을 잃었다”는 기사, 어떻게 읽어야 할까

8월 중순 케이플러 데이터를 인용한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최근 몇 주간 호르무즈를 지난 기름·가스 화물의 상당수가 이란 연안을 피해 오만 쪽으로 갔거나, 위치 신호를 끄고 지나갔다는 내용입니다. 한 달 전만 해도 그 길로 다니는 배는 거의 없었습니다.

여기서 조심할 게 셋 있습니다.

첫째, “이란 연안을 피했다”와 “해협이 다시 붐빈다”는 다른 얘기입니다. 앞서 봤듯 전체 통과량은 평시의 10% 안팎입니다. 분모가 10분의 1로 줄어든 상태에서 나온 비율입니다. “이란 항로 이용 400% 증가” 같은 표현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원래 숫자가 거의 0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둘째, 신호를 끄고 지나간 배는 집계에서 빠집니다. 선박 추적 데이터는 배가 스스로 켜 둔 신호를 모은 것입니다. 끄면 안 보입니다. 오만 쪽 바다에서 배와 배 사이로 기름을 옮겨 싣는 경우도 늘어, 공식 숫자와 실제 물동량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습니다.

셋째, 같은 데이터로 정반대 제목이 나옵니다. 같은 케이플러 집계를 놓고 “이란이 통제권을 잃었다”는 기사와 “시장이 호르무즈를 기다리기를 그만뒀다”는 분석이 같은 주에 나왔습니다. 앞의 문장은 이란을 주어로 놓았고, 뒤의 문장은 시장을 주어로 놓았습니다. 주어를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 같은 숫자가 승패 기사도 되고 포기 기사도 됩니다.

보험업계의 반론

여기서 제 결론에 반대되는 자료도 같이 놓겠습니다.

선박보험의 값이 사실상 정해지는 곳이 런던의 로이즈 보험시장입니다. 그곳 보험사들의 모임인 로이즈시장협회(LMA)는 통행량이 줄어든 건 보험을 못 구해서가 아니라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도 원하면 보험은 살 수 있고, 배를 세운 건 보험사가 아니라 선주의 안전 판단이라는 겁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험사가 해협을 막았다”는 문장은 조금 과합니다. 더 정확히 쓰면 이렇습니다.

보험사가 문을 닫은 게 아니라, 문에 가격표를 붙였고 그 값을 못 내는 배가 멈춘 겁니다.

다만 이 정정이 앞의 구조를 무너뜨리지는 않습니다. 문을 잠그는 것과 아무도 못 낼 값을 매기는 것은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행위지만, 배 입장에서 결과는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격표는 누구의 선포도 거치지 않고, 어떤 표결도 없이, 매주 갱신됩니다.

한 가지 더. 이 보험료는 나라별로 다릅니다. 미국·영국·이스라엘과 관련 있어 보이는 배는 같은 길에 몇 배를 더 냅니다. 어느 나라도 선포한 적 없는 차별 통행료가 런던 보험시장 계산표에는 이미 존재하는 셈입니다.

한국에 오는 청구서

항목 수치
해협 안쪽에 묶인 우리 선박·선원 26척 · 602명 (정부 브리핑 기준)
국적선 1회 통과 보험료 약 30억원 (5월 보도)
중소선사들의 하루 손실 약 5억8000만원
정부 지원 예산 14억원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는 4월 국내 손해보험사·재보험사와 만나 요율 산정과 가입 절차를 논의했고, 5월에는 해협에 묶인 중소·중견선사 선박 10척에 대해 국내 보험사들이 공동인수 방식으로 보험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한계가 분명합니다. 요율 자체를 정하는 곳은 런던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5억8000만원씩 손실이 나는 판에 지원 예산은 14억원입니다. 이틀 반이면 소진되는 금액입니다.

이 비용은 기름값, 전기요금, 플라스틱 제품 가격으로 옮겨옵니다. 원유값이 올라 정유사 원가가 뛰면 시차를 두고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고, 석유화학 원료값이 오르면 웬만한 생활용품 가격이 따라 오릅니다. 유가가 조금 내렸는데도 주유소 가격이 안 내려간다면, 배 한 척당 138억원짜리 청구서가 아직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태가 진짜로 바꿔 놓는 것

기름값보다 오래 남을 변화가 하나 있습니다.

“국제 해협은 공짜로 지나간다”는 60년 된 원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란은 통행료를 걷겠다고 했고, 미국도 한때 화물값의 20%를 요구했습니다. IMO는 “해협을 지난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걷을 법적 근거는 없다”고 못 박았고, 세계 8개 선주단체는 공동으로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규범은 아직 살아 있지만, 규범을 지키자는 성명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규범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동시에 국가가 보험자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보험사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고에 대비해 자기가 떠안은 위험의 일부를 다른 회사에 넘겨 두는 것을 재보험이라고 합니다. 미국 정부는 민간 보험사가 비워 둔 그 자리를 대신 서 주겠다며 400억달러(약 55조원) 규모의 보증 창구를 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창구에 신청자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돈을 들고 나타나도, 값을 매기는 권한이 여전히 시장에 있으면 시장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사태에서 힘을 행사한 주체는 셋인데, 그중 둘(이란, 미국)은 선포를 했고 하나(보험시장)는 선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배를 실제로 멈춰 세운 건 선포하지 않은 쪽이었습니다.

제가 틀릴 수 있는 지점

이 블로그의 원칙대로, 제 판단이 어디서 무너질 수 있는지도 적어 둡니다.

  • 인과가 반대일 수 있습니다. 보험료가 비싸서 안 간 게 아니라, 정말 위험해서 안 가고 그래서 보험료가 비싸게 매겨진 것일 수 있습니다. LMA의 주장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저는 두 방향이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에 가깝다고 보지만, 어느 쪽이 먼저인지를 공개 자료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 숫자의 시점이 뒤섞여 있습니다. 보험료율, 통행량, 통행료는 각각 다른 시점에 발표된 값입니다. 주 단위로 갱신되는 값을 한 표에 놓고 비교하면 실제보다 대비가 선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 집계되지 않는 물동량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신호를 끄고 지나가거나 해상에서 옮겨 싣는 물량이 크다면, “통행량 10분의 1”이라는 전제 자체가 과장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기름값은 얼마나 오르나요?

3월 폐쇄 국면에서 두바이유는 배럴당 166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후에는 전쟁 전보다 높은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습니다. 유가는 해협 상황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감산·수요·재고가 함께 움직이므로, 해협만 보고 유가를 예측하는 건 무리입니다.

Q. 전쟁위험보험료가 정확히 뭔가요?

일반 선박보험은 전쟁 피해를 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험 해역을 지날 때 별도로 가입하는 것이 전쟁위험보험입니다. 보험료는 배값에 몇 퍼센트를 곱하는 방식으로 매겨지고, 보통 일주일 단위로 갱신됩니다. 그래서 상황이 바뀌면 다음 주에 바로 값이 바뀝니다.

Q. 우리나라는 대체 항로가 없나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홍해와 푸자이라로 빼는 송유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카타르산 LNG는 출구가 호르무즈 하나뿐이라 우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원유는 우회로가 있고 가스는 없다는 것이 이 사태에서 한국이 가장 취약한 지점입니다.

Q. 이란이 정말 통제권을 잃은 건가요?

이란 연안을 지나는 배의 비중이 달라진 건 맞습니다. 해협 전체 통행량이 평시의 10% 안팎이라, “이란이 졌다”기보다 “아무도 정상적으로 못 지나간다”에 가깝습니다.

Q. 전쟁이 끝나면 보험료도 바로 내려가나요?

잘 안 내려갑니다. 한 번 크게 데인 보험사는 몸을 사립니다. 홍해 사태 때도 그랬습니다. 휴전 소식에 요율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온 적도 있지만, 절반이 되어도 평시의 스무 배입니다. 돌아가느라 늘어난 뱃길과 올라간 보험료는 상황이 정리된 뒤에도 한동안 남습니다.

해협을 막은 보험료

호르무즈 해협을 막은 건 이란의 미사일도, 미국의 함대도 아니었습니다. 배값의 10%를 요구하는 보험료 청구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청구서에는 서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란의 통행료에는 의회 표결이 있었고, 미국의 20%에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고, IMO의 반대에는 성명서가 있었습니다. 보험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매주 조용히 갱신되는 숫자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이란이 이기든 미국이 이기든 아무 합의가 안 되든, 공짜였던 바닷길이 유료가 된다는 결론은 같습니다. 다르게 오는 건 청구서의 이름뿐입니다. 통행료로 오거나, 항로표지 부담금으로 오거나, 지금처럼 보험료로 옵니다.

어느 쪽이든 마지막 청구서는 우리가 넣는 기름값으로 도착합니다.

이 글에서 언급한 공개 자료
사색가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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